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 by

최근 몇년간, 내맘대로 되는 일보다 내맘대로 되지 않는 일이 훨씬 더 많았다.

꼭 그렇지만은 않겠지만은 약간 과장을 보태자면, 내맘대로 되는 일이 전무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원망의 대상이 필요했다. 무언가를 원망하지 않고서는 내 감정에서 벗어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자책으로, 가족에 대한 원망으로, 상황에 대한 원망으로 다양하게 나타났다.

괴로움의 정도만 달랐을 뿐 내가 처한 상황은 변화하지 않았다. 

변화하지 않을 것을 알았지만, 내겐 어쨌든 대상이 필요했다. 

 

사람 만나는 것을 누구보다 좋아하던 내가, 연락을 받지 않는 일이 많아졌고, 아는 사람이 꼴도 보기 

싫어지기도 하고, 길에서 혹여나 지인을 마주칠까 밝을 때는 길을 다니지 못하기도 했다.

누군가를 마주칠성 싶어 모자를 푹 눌러쓰고 다닌 적도 다반사였다. 

 

지나고 보면 그렇게까지 했어야 싶지만, 그때의 나는 정말로 자신감이라는 것은 눈을 씻고 찾아볼래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터널이 어서 지나가게 해주세요. 빛을 보게 해주세요. 기도한 적도 여러번.

  

시간을 흘렀고, 상황은 좀더 나아졌고, 이제 나는 그때의 나를 다시 한번 돌아보고 감싸줄 여력이

조금은 생겼다.

 

혼자서 많이 괴로워했던 내가 안쓰럽기도 하고, 그 시간을 버틴 내가 대견하기도 하다.

 

내가 마음먹은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굳게 믿었던 적도 있었다.

이런저런 일을 겪고 난 지금, 나는 상황의 흐름이랄까 운이랄까, 한 단어로 콕 집어 설명할 순

없지만 내가 통제할수 없는 그 무언가가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고 나서 한 걸음 겸허함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물론 상황에 모든것을 맡기는 수동적인 인간이나, 안일한 인간이 되어서는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모든걸 내가 컨트롤할 수 있다는 오만함에 빠지는 것도 좋지는 않은 것 같다.

 

조금은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긴장을 놓아주는 것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 [?] 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지금까지 겪어온것들 보다도 더 많이 예측불가능한 일들을 겪을 테니까 말이다. 

그 파도들을 유연하게 탈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삶의 고수가 아닐까.. 싶다.

언제 고렙이 될런지? ㅎ 

 

 

 

 

 


수다 위드 교수님. by

근 이년만에 졸업한 학교의 교수님 두분을 찾아뵈었다.
꼬꼬마 학부생때 교수님들 방에 가서 워낙 찌질거렸던지라 ...
해늫은가닥[!]이 있으니 오랜만에 찾아뵙고 여전히 징징거려도 그러려니 해주시는것 같다.
내가 그리 살갑다거나 행사?를 잘 챙긴다거나 하는 편은 아닌데 교수님들을 생각하면 더
자주 찾아뵙고싶고 좋은거 사가고 싶고 그런 마음이 든다.
나를 보자마자 삼초만에 네일한걸 알아채시고 코트색깔을 지적하시더니 ㅋㅋ
못난이가 세련되졌다고 그래도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이 되냐고 쿠사리를 주시던 교수님이
어찌나 정겨웠던지...ㅜㅋㅋ 여전하시구나 싶어서ㅋㅋ 난 쿠사리를 먹었지만ㅋㅋ
이것저것 먼가 대기업의 브랜드들이 많이 입점?한 학교가 조금 낯설기도 햇지만
쫄래쫄래 따라가서 뚝불도 점심으로 얻어먹고 교수님 유학시절 생화학 노트도 구경하고 ㅎㅅㅎ
꼭두새벽부터 서울에 올라간 보람이 있는 오후를 보냈다. 몇시간을 있었는지..


워낙 쟁쟁한 제자들이 많으시겠지만
좀더 자랑스러운 제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덤으로 좀더 사랑스러운 제자도.ㅎ

충전이되었다 브이v

amor fati, 운명愛 by

 

   [여덟단어] 라는 책을 읽고 뇌리에 박힌 단어. 
 세상살이가 내맘대로 되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좌절하고, 원망하고 하던 때에 읽었던 책이었는데
 그 책에서 저자가 이 단어를 언급했었다.
내게 오는 것들에 감사하고, 가지지 못한 것에 너무 큰 미련을 두지 않기로, 책을 읽으며 잠시 마음먹었었던 기억이 난다.
인간은 미련한[?] 존재라 가진것에 애정을 주기보다 부족한 것에 집착하는 것에 에너지와 시간을
훨씬 더 쓰는 것 같다.
당장 나부터가 그랬고 ...
진부한 단어를 손에 꼽으라면 희망 노력 같은 단어와 함께 사랑과 감사라는 단어가 뽑힐 것 같지만
진부하다는 것은 그만큼 필요하기 때문에 많이 쓰이고, 진부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며칠전 두개의 다큐를 연이어 보게 되었는데 우연찮게도 둘다 시각장애아동을 소재로 한것이었다.
사진작가와 앞을볼수없는 친구들이 같이 카메라를 들고 여행을 떠나. 파도가 오는 소리에 맞추어 바다를 찍는
모습. 자신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며 얼굴의 부분부분을 셀카로 찍어보는 모습.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결핍이 정말로 크게 느껴질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들로 나름의 삶을 채워가고 있었다.
아파보아야 건강의 소중함을 알고 잃어보아야 가진것을 자각하는 이 우둔함이란.

난 아직 미약한 존재 / 채워갈것이 많은 찌끄레기[!]지만
해냈던 것들에 자부심을 가지고 가진것에 고마움을 가지고
소소한 꽃한송이를 피우기위해 계속 애써보겠다.

 


♩ Tricia evy _ Meet Me : 샹송과 보사노바의 그 어디쯤 by



신세계에 설 선물을 보러 갔다가 마음에 딱히 들어오는 물건을 찾지 못하고
교보문고에 쉬러[?] 갔더랬다. 서점은 나의 마음의 안식처...[?]니까..
메모해두었던 보고 싶었던 책들을 뒤적거리고 있으려니까, 한켠에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음악이 들려오더라.
마음이 편안..하다기 보단.. 뭐랄까... 보통 서점에서 잔잔하게 틀어놓는 클래식이 아니라 재즈가 흘러나오고
있어서 나도 모르게 주의깊게 듣게 된거 같다. 어딜 가든 좋은 음악에는 귀를 쫑긋 세우는 안테나.
재빨리 네이버 어플을 켜서 음악을 검색해보았다. 안떠..안뜨네? 왜때문이ㅣ지ㅛ.치ㅏㅓ;나ㅓㅍ ?
멜론에도 없어, 스트리밍도 할수 없어?! 유유.

찰랑찰랑 거리는 보싸(노바)인데...좀더 딥..한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생선냄새를 맡은 고냥이처럼 음악이 들리는 곳을 따라가보았더니. 한켠에 CD를 파는 가판대?가 있었다.
직원분께서는 손님이 없었는지 아주 반갑게 나를 맞으면서[?] 이 음악 저 음악을 들려주시더라
3~4개에 걸친 음반의 음악을 들려주시면서 굉장히 열심히 ㅎㅎ

내가 끌려서 따라갔던 음악은
Tricia Evy라는 가수의 Meet Me 라는 음반, Track 1: Nous Deux
 한국 음반사의 홍보부제는 '카리브해 흑진주가 노래하는 보사노바, 그리고 달콤한 샹송' 
 뭐 조금 오그리토그리한 부제긴 하지만, 흠? 들어볼까? 하는 마음. 너무 오랜만의 CD구경이기도 했고.
 뭔가 어제의 여유로웠던 일상을 기억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고.
 그리하여
 정말 X 정말 X 정말 오랜만에 스트리밍이 아닌 음반을 사게 되었다능.

 보싸인데 불어로 불려진 노래라, 독특한 느낌이 난다.
완전 보싸처럼 계속 잔잔하고 산들바람같지 않아서 단조롭지 않다는 점도 좋고.
보통 영어나 스페인어로 불러진 것만 들었는데 정통 샹송도 아니고..
암튼 저 찰랑거리는 보사노바의 드럼은 확실히 중독성이 있다.
스캣을 듣고 있자니까 옛날생각도 나면서 ㅎ


2014년 1월의 하루를 기억하며 잘 간직하면서 들어보겠다, 이 음반. 
1번 Nous Deux와 9번 Lanmou A 마지막 11번 트랙이 개인적으로 맘에 드는군. 
유튭에서 찾아본 인터뷰 영상. 앨범재킷보다 어려보이고 생기있다. 이쁘다  눈빛이 +_+ !
http://www.youtube.com/watch?v=lvYxvtlRTd4




 





















그해여름, 해물포차 by




                   즐거워보인다. 묵혀진 사진첩을 뒤적이다가 발견한 컷.ㅎ 
                 지금보다 볼살이 통통한것에 먼저 눈길이 간 뒤, (애써 사진크기를 다시 조정해본다..)
                 그 날의 해운대가 얼마나 유쾌했었는지
                 다시 떠올려본다.. ㅋㅋ 남포동,보수동,광안리,해운대를 하루만에 모두 찍고 아주 신나게 
                 크하하거리면서 거리를 돌아다녔었더랬다. 
                 마음의 여유가 몹시 없었던 시기, 딱 하루치 숨돌릴 시간을 내었던 그날이 참 많이 힐링이 
                 되었던 기억이 난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때면 영화인들이 모두 몰려온다는 그 
                 포장마차 거리에서 해물을 고르고, 싱싱한 생선과 아주머니간 한차례 기싸움이 있은 후
                 우리 앞 접시에 놓이기까지...(살짝 잔인한가...)의 과정을 살짝 알딸딸해진 상태로 지켜보면서
                 뭐가 재밌는지 계속 해실해실거렸었지.  거의 반년?만에 마시는 술에 성닥과 시시덕시시덕 
                 거리면서 그날의 밤은 특대해물라면으로 마무리_ 그 해 여름, 거의 유일하게 웃었던 순간이지 
                 않을까.. 싶다. 저떄가. 사진에 있는 나는 그저 즐겁다는 듯이 웃고만 있지만 ㅎ
                 잘 이겨낸 내가 짠하고, 고맙다  
 

1 2 3 4